LOOP의 추억(2) - 회원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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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LOOP의 추억(2)
작성자 최병옥 등록일 2005-07-22 15:00
조회 772
그날,
500까지 떨어진 고도에서 마지막 써멀의 끝자락을 잡고 써클링을 시작했다.
저녁해는 벌써 문경온천 뒷산에 걸려있고 바닥엔 십여명의 행그리들이 기체를 분해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써클링중에 문득 벅찬 환희를 느꼈다. 드디어 루-프를 해냈구나!
얼마나 이날을 기대해 왔는가!?
12년 전 경기도 광주의 매산리에서 초보 교육을 받던 중에 단 한번 보았던 루-프의 감동,
눈앞에서 포플라 나무를 스치는 바람소리를 내며 커다란 원을 그리던 행글라이더의 강렬한 영상. 그리고 그 황홀한 역동성에 매료되어 속세의 모든 것에 흥미를 잃게 되고 오로지 행글라이더만을 유일한 낙으로 여기며 살게 된 현실, 세 번의 골절과 세계대회의 추억들, 대화의 코드가 점점 안 맞게 되어 멀어져간 친구들 등등 수많은 생각이 교차되면서 예전에 느껴보지 못한 해방감에 휩싸였다.

고도750. 더 이상의 상승은 없다.
멋진 확인사살로 루-프의 대미를 장식하자.

바람은 약간 거친 정풍 VG80%(10%더 당김) 시작하자!
온 몸의 털들이 빳빳하게 서고 무념. 무상.
베이스바를 당김과 동시에 시작되는 가속과 바람소리

가슴(하나.둘)-배(셋.넷)-허리(다섯)-무릎위10cm(여섯.일곱)
쉬-이-익 쒜애액-
주체할 수 없는 속도로 내리 꽂히는 기체,
윙 팁의 몸부림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1차로 가슴까지 스므스 하게 미는순간,
파-아-앙
수직의 직벽을 오르듯 급상승하는 최신기종TOPLESS. 라이트 스피드!.
눈깜짝할사이에 반원을 그리며 날아올라 뒤집어진 상태에서,
2차로 턱을거쳐 얼굴까지 루프의 상황을 보아가며 스므스 하게 밀어주었다
다시 또 성공! 완벽한 LOOP!
한번 더. 2회전
베이스 바 당기고. 속도가속 하나 둘....다섯.
다시 ,베이스 바 턱까지 밀고. 기체급상승.
좋아 좋아

지금의 내 모습을 보라
완벽히 뒤집어진 상태에서 베이스 바의 위치를 확인하며 고개만 살짝 돌려 윙팁 끝의 먼 지평선을 확인하고 있지 아니하냐! 이제 잠시 뒤 얼굴까지만 밀어주면 2연속루프의 완벽한 성공.
으하하하--- 나는 해냈-......

순간,

모든 것이 정지했다.
아니 ,무언가 정지한듯한 느낌이....?

우당탕 쿵탕

이럴수가, 이런 젠장! 오 마이 갓!
“우낙”,“우낙 ” (cried the CHOI)
*참고로 내 선수용 하네스는 낙하산이 하네스 안에 내장되어 낙하산의위치가좌측인지 우측인지 구분이 안될때 가 있어서 우측에 있다는 뜻으로 비행중 ‘우낙’을 늘상 외우고 있슴.

믿기지 않은 현실이다.

700미터 상공에서 나는, 하늘을 보고 뒤집어진 기체 위로 내동댕이쳐졌고 평소, 내가 그토록 애지중지 하던 베이스 바는 주인을 잃은 채 거꾸로의 모습으로 이리저리 허공을 찔러대고 있었다.

사이드 바 사이에서 이리저리 쏠리며 언뜻언뜻 보이는 지상의 모습과, 통제 불능기체의 상하좌우 요동은 마치 2차대전 당시 추락하는 독일 전투기의 영화 속 장면 그대로였다.
땅과 하늘이 합해져 사방이 정신없이 돌고 있었다.

아!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말았구나 !
지금껏 비행하면서 수없이 갈등하던 생과사의 갈림길, 그 말로가 바로 이것이었구나! 이렇게들 떠나갔구나!
17세 되던 해에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지금까지 두려움이란 것을 모르고 살았다.
하지만, 경험해보지 못한 현재의 상황은 분명 죽음 그 자체로 인정 하는 것이 맞다 고생각하니 두렵다 기보다는 차라리 허무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낙하산 손잡이가 잡혔다.

적당한 방향으로 빼서 던져야 할 텐데 ,
퍼뜩, 고도가 아직은 높다는 생각이 스친다.
“그래 침착하자 그리고 저 닭발 , 아니 베이스 바부터 잡아보자”
요동치는 기체위에서 몸을 일으켜 보고자 하였으나 아뿔사! 나의 두발은 하 네스 속에 지퍼로 꽁꽁 묶여 있어서 도저히 일어설 수가 없는 상태였다.
무릎을 구부리지 못하니 허리만 겨우 세울 수 있었다.
우당탕 쿵 주루룩.
그 와중 에도 나의 몸은 이리저리 쉬임없이 좌우로 부딪히고 앞뒤로 밀리며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결국 지퍼를 열고 일어서는 걸 포기하고 기체의 양 사이드 바 사이에 드러누운 상태에서 한쪽 사이드 바를 잡고 두 팔만을 이용하여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한팔, 두 팔, 안간힘을 쓰며 기어올라 베이스 바를 향해 손을 내뻗는 어느 순간

휘익 덜커덕 . 짜~잔~~~~(기체 복원되는 소리)
“하이고 살았다!”
정말 ‘하이고’ 소리가 절로 나오는 순간 이었다.

거짓말같이 기체가 복원 되었고 베이스 바는 다시 내손에 쥐어 있었다.

오오! 예전에 내 어찌 상상이나 했으랴! 700미터 까마득한 허공에서
마치 손오공처럼 기체에 비스듬히 누워 세상을 내려다 볼 줄을 !

서둘러 모든 상황을 확인한 결과 고도는 500을 유지하고 있었고 날개의 손상은 확인 되지않았으나 조정 되는 상태로 보아 착륙은 무리 없을 듯 하여 마음을 놓는 중에 다만,
베이스 바의 우측3/4정도부분이 나의 몸쪽으로 역 브이(v)자의형태로 구부러져 있었고 그로 인하여 사이드 바가 안으로 오므라들어 평소 주먹하나 정도이던 조종공간이 두 세배정도가 되어 팔을 펼친 상태에서 비행해야 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뒤집어져 동댕이쳐지는 순간에 베이스 바를 얼마나 꽉 쥐었으면 평소 발로 구부려도 쉽게 구부려지지 않던 베이스 바가 그것도 허공중에서 구부러졌는지, 살고자 하는 인간의 순간적인 힘이 대단 하구나 하고 생각 하면서 행여나 구부러진 베이스 바가 공중에서 부러지지 않을까 전전긍긍 하며 최대한 조심스레 비행 후 착륙성공.

나는 부활(?)하였다.
땅바닥에 있던 자 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사선을 넘나든 나를 보고도 소 닭 보듯 하였다.
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다.
하긴 높은 고도의 글라이더에 누가 관심을 가질까. 행글라이더는 착륙이 멋있지.
워낙 높은 고도에서 벌어진 상황이라 관심이 없었으리라.

분해를 하면서 기체를 확인해보니 세일은 멀쩡한데 세일 안쪽의 빠텐 3개와 세일을 지지해주는 나사달린 지지대 2개(이름 잘 생각이 안남)가 위로 완전히 구부러져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내 몸무게 73kg과 하네스 10kg 기체무게30kg 기타계기 및 부속물을 포함해서 거의 120kg정도를 기체가 잡아 돌릴 때 날개가 받는 하중이 얼마나 큰지 짐작이 간다.
하여튼, 기체를 상국이 에게 맡기고 금강산 식당으로 향하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는데,

첫째, 가족들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 목숨이라고 너무 함부로 다룬 것 에 대한 후회와

둘째, 이러한 곡예비행에 대한 전문적인 교본이 국내에 한권도 없고, 루프를 시도하다가 실패했거나 또는 성공한 사람들의, 어쩌면 한사람의 생명을 살릴지도 모르는 소중한 경험담이 본인과 그 팀원들 간에만 공유되어 막상 루프에 목말라하고 도전 하는 파일럿이, 루프에 대하여 거의 무지한 상태에서 깡다구만으로 목숨을 건 곡예를감행(?)하는 어이없는 현실(나만 그럴지도 모를 일이다)

셋째, 내 뒤를 이어 어디에선가 또 목숨을 걸고 루프를 시도할 행글라이더인과 그 가족에 대한 연민 등이 복합적으로 교차되면서 ,그들에게 나의 이런 무모한 도전의 경험을 소상히 설명해 주어 더 이상 누구도 이처럼 위험한 상황에 처하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생각 등이 그것이다.

우연인지 때마침 식당 TV에서는 생후 한달된 아기가 불치의 병과 싸우는 눈물겨운 스토리를 방영하여 착잡한 내마음을 더욱 미안하게 하였다.

어쨌든, 그날
최초로 시도했던 나의 루프에 대한 추억은
“워메 죽다 살았어 야!” , “하이고 시껍했다 마”라는 사투리 두 마디로 요약하고 싶다.
그리고 다음 기회엔
루프를 하기 위해 내 나름대로 남 모르게 훈련하고 연구하던 윙 오버와 스핀, 360도 연속회전 그리고 거기에 숨겨진 또다른 위험상황과 대처방법 루프 시뮬레이션 경험등에 대해서 아는대로 설명하고
또다른 경험자의 새로운 의견을 들어보는 코너로 이어가서
더 이상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먹어 보는 파일럿이 없도록 최대한 노력 할 것이다.
윙오버의 추억! 아 그것도 끔찍했어!

- 최병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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