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까지는 첫날 이륙장에서 타스크 커미티를 뽑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이렇게 해서는 미리 타스크 구상을 할 수가 없고, 특히 필요한 웨이포인트를 미리 준비할 수가 없습니다. 여태까지는 주어진 웨이포인트를 가지고 그 안에서 하라던지 정 필요하면 이륙장에서 몇개 입력을 시키곤 했습니다.
마치 국가대표 감독이 미리 선수 선발권까지 있어야 하듯이 타스크 커미티가 자신이 필요한 웨이포인트를 제작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웨이포인트도 매년 검토하여 필요한 것 넣고 불필요한 것은 빼는 수정작업을 하여야 합니다. 여태까지 그렇게 안하고 그냥 이전에 쓰던 것 그대로 인쇄해 경기 당일 타스크커미티 뽑고 던져 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는 경기위원장이 되고서 이것은 꼭 개선해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웨이포인트 제작 작업 현황도 선수까페에 공개해서 선수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번에 양평 경기를 준비하면서 동풍 시 타스크를 짜기에 웨이포인트가 너무 미흡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동풍이 불 때, 청계산은 양평 유명산 뒤에 덩치가 작아서 상승이 좋지 않고, 고압선이 지나고 있습니다. 원천적으로 부적격. 예전에, 광주시 쪽으로 멀리 보낸 적이 있는데, 사실, 그곳은 서울공항이 가까워서 휴일에도 공역 허가가 잘 나지 않는 곳입니다. 대한체육회 가맹을 노력하고 있는 우리 협회가 관계 당국과 그런 마찰을 일으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결국 가능한 곳은 이번에 비행한 강 건너 백병봉 일대 산자락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강건너에는 강상공원 말고는 백병봉, 양자산 일대에 웨이포인트가 전무했습니다. 그래서, 경기 한 3주 전쯤에 양평플라잉파크 박상준 팀장을 찾아가 타스크 커미티에 참여해 달라고 요청을 하고, 백병봉 일대 웨이포인트를 만들었습니다.
구글어스로 찍기만 하면 되는 것이라고 폄하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박팀장과 저는 어떻게든 좋은 경기를 하기 위해 꼼꼼하게 웨이포인트를 찍고, 식별하기 좋은 이름을 짓도록 노력했습니다. 사실 이름짓기가 찍기 보다 더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지도 하나에 지명이 다 나와 있는 것도 아니고, 구글어스 뿐이 아니라, 다음지도, 종이지도 다 참고해서 이름을 지었습니다.
결국 그것이 이번 경기 성립에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동풍이 불고 기상이 약했던 둘째날, 백병봉 일대 21km 짜리 타스크에 20km 를 불과 4명이 넘어 가까스로 성립을 했습니다. 잘못하면 몇 년 만에 경기 무산이 될 뻔하다가 겨우 하나 건졌습니다.
물론 전날 웨이포인트를 급히 만들고 이륙장에서 입력을 시켰을 수도 있습니다. 그날 양평 레포츠 축제 개회식까지 참가하고 와서 시간이 넉넉하지도 않았고, 날씨가 그리 희망적이지 않은 가운데서 웨이포인트 4개 씩이나 입력을 시켰으면, 욕은 경기위원장이 다 먹어야 합니다.
세상사가 야박한게 일이 벌어지지 않게 잘 준비해서 일이 벌어지지 않으면 그것에 대한 인정은 받기 힘들지만, 만약에 그것을 못하여 일이 터지면 비난 받기는 쉽습니다.
양평 일대를 가장 잘 아는 선수가 박상준팀장이라고 인정이 되었고, 그래서, 타스크 커미티 참여를 권유했습니다. 그때만해도 경기 참여를 할지 말지는 불확실했으나, 저는 그것은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선수가 아니라도 타스크 커미티를 참여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저와 박팀장의 판단과 노력이 이번 양평 경기를 성사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그런데, 선수가 아닌 사람 타스크 커미티에 임명을 했다는 별 찌질한 비난이 생긴 것에 대해 심히 유감스러우며, 더 이상 이런 풍토는 묵과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편, 선수까페에 남궁필 선수가 포사격장 인근 금지구역을 올려 주시고, 전화로 작년에도 그곳에 몇명 비행한 선수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양평 길병원에 웨이포인트를 새로 만들었습니다. 여주쪽으로 타스크를 잡을 때 옥천면과 길병원을 턴포인트로 주면 포사격장은 경유하기 어렵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많은 사람들이 참여 하는 가운데서 협회의 힘이 더 커지게 됩니다. 그러자면, 폐쇄적, 배타적 풍토가 사라져야 합니다.
8년 전 쯤인가 한국 비리 온상인 사학 법인에 사외 이사 한명 참여 시키게 사립학교법을 개정했는데, 그것을 빨갱이니 뭐니 난리치다가 몇 년 후 결국 되돌려 놓은 일이 생각이 납니다. 유사이래, 폐쇄적, 배타적 노선으로 죽 가다가 잘 된 집단이 없습니다.


